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슈판다우 교도소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[[1881년]] 완공됐을 때의 슈판다우 교도소는 군 교도소였다. 교도소치고는 아담하고 수용인원도 300명 밖에 안되는 건 군 교도소로 쓰기 위해 지어졌기 때문이다. 하지만 [[제1차 세계 대전]]에서 [[독일 제국]]이 패전한 직후인 [[1919년]], [[초인플레이션]]으로 치안이 [[개판]]이 됐을 때 [[교도소]]가 모자란 나머지 민간인 범죄자도 슈판다우에 수용했고 300명 정원인 교도소에 무려 600명을 수용하는 초과수용을 감행해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. 그 후 [[나치당]]이 [[나치 독일|정권을 장악한 시기]]에는 나치에 반대하는 독일인들을 수감하는 [[정치범 수용소]]가 되었다. 그리고 나치가 패망한 다음 [[뉘른베르크 재판]]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나치전범 7명을 수용하는 수용업무를 마지막으로 [[1987년]]에 철거되었다. 건물의 내구성에는 큰 문제[* [[루돌프 헤스]]가 사망한 시점에서 지은 지 거의 백년에 육박하면서 건물이 심하게 노후화된 상태였으나 내구도에는 문제가 없었다. 본래 슈판다우 교도소는 슈판다우 [[요새]]와 동일한 축성기술이 적용된 성채나 다름 없었는데, 그 때문에 거주의 쾌적함보다 내구성이 강조되었다.]가 없었는데도 굳이 철거한 이유는 [[네오 나치|나치 추종자]]들이 슈판다우 교도소를 성역화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. 철거 후 나온 폐자재들조차 추종자들이 [[성물]]화하려는 것을 막으려고 바다에 뿌리거나 다른 건축물의 토대로 쓰는 등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